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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방

풋사과

by 푸름(일심) 2022. 7. 21.

풋사과

             

                김선옥

 

우리 집 정원 주변에는 과실수가 몇 그루 있다

 바뀔 때마다 앵두 자두 살구 사과 복숭아가 차례로 익어가는데

꽃이 피고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 말고도 하나씩 따먹는 행복감을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는다고 하지만 나는 먹기 위해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맛있는 과일을 먹을 때는 더 그러하다. 철마다 나오는 밥보다 더 좋은 과일을 먹을 때 정말 행복하다. 

과실수 중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나무가 있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주렁주렁 매달린 풋사과을 보면 옛추억에 빠져든다

 

연년생 동생을 둔 나는 어린 시절 유난히 몸이 약하여 할머니 아버지 엄마의 걱정거리가 되었었다

가정통신란에는 "몸이 약하여 결석을 많이 함"으로 대부분이었고 체육 시간에는 교실을 지킨다거나

운동장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몸이 약하다 보니 잔병치레를 많이 하였고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개근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얼굴색이 하얀 백설공주, 세라복을 입은 아이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들의 관심 어린 사랑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

병원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의사 선생님조차도 늘 염려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시절은 모두가 가난하여 꽁보리밥이라도 허기진 배를 채우면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간식거리라고는 아직 여물지 않은 감자 몇 알 밥 할때 한쪽 귀퉁이에 넣어 도시락에 담아 주었고 

쌀알 듬성듬성 섞긴 보리밥에 감자 몇 알 툭툭 놋쇠주걱으로 으깨어 주식을 대신하였다

농부인 우리 아버지는 한 섬지기 농사를 지으시며 염부장으로 근무하시고 바다에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아 짭짤한 수입으로 보리밥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가시는 개척정신과 근면함 때문이었다

몸이 아플 때마다 머리맡엔 과자랑 사탕이며 맛있는 간식들이 있어 또래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식음을 전페하고 누워 있다가 사과가 불현 듯 먹고 싶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나 먹을 수 있었던 사과를 사러

할머니는 보리 캄부기 피는 보리밭 이랑을 지나 시오리 길을 걸어 오일장에 가셨는데 장날인데도 아직 이른 철이라 사과는 있을 리 없다.

생각다 못해 과수원에 가셔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풋사과 몇 개를 사 들고 한걸음에 오셨다

 

때마침 순이가 왔었는데 그렇게 맛있는 게 많이 있는데 먹고 얼른 일어나지 왜 앓고만 있는지 모르겠다며 

먹고 싶다고 울며불며 떼를 쓰더라고 순이네 가셨던 엄마가 다음에 더 많이 사다 줄터이니  

한개만 주라 해서 사과는 물론 과자랑 왕사탕도 주었다

 커 가며 몸은 건강하여졌지만 그 후로 아버지는 과실수를 심으셨고 사과가 주렁주렁 열리면 풋사과를 몰래 따서

집 뒤란으로 돌아가 킥킥거리며  순이와 도란도란 잘도 먹었다

몰래 먹는 풋사과지만 새콤달콤 한 그 맛은 지금도 연애하던 시절의 달콤한 사랑처럼 잊지 못한다. 

순이와 나는 친하게 되었고 학교 갈때는 번번히 내 책가방도 들어 주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영등포 방직공장으로 순이는 떠나고

나는 상급학교로 진학하기에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이 예쁜 순이는 학벌 좋은 총각과 결혼하고 아들 딸 낳고 잘 산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머리가 희긋희긋한데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계절없이 원하면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는데 순이야 어디에서 살고 있니?

맛있는 능금 한상자라도 보내줄께  연락좀 하려무나

이 가을 다 가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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