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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 1/도종환 1. 피상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화폭에 산, 나무 들, 꽃, 하늘, 사람의 밑그림을 연필로 그려놓고, 나무는 고동색, 나뭇잎은 초록색, 하늘은 푸른색 이런 식으로 화폭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색칠을 해 나간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이미 선험적으로 얼굴은 살색, 머리는 까만 색 땅은 황토색으로 칠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앞에 있는 나뭇잎 색깔이나 하늘의 변화하는 빛깔을 잘 관찰하면서 그리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그려놓은 그림들은 그래서 늘 그게 그것 같고 새롭지 않다. 나무둥치에 고동색을 가득 칠해 놓은 아이에게 고동색 크레용을 들고 가 나무에 직접 대보게 하며 "어때, 색깔이 같니?" 하고 가르치는 선생님.. 2022. 7. 21.
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 2/도종환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을 둘러 앉혀 놓고 지글지글 고깃근이라도 구울 때 소위 오르가슴이란 걸 느낀다는데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 그것은 마치 중생대의 지층처럼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을 층층히 켜켜로 머금고 낯뜨거운 오르가슴에 몸부림친다 그 환상적인 미각을 한 점 뜨겁게 음미할 새도 없이 식구들은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삼겹살을 구워 먹은 뒤 폐허 같은 밥상은 .......... 헐거운 행주질 한 번으로도 절대 깨끗해지질 않는다 하얀 손등에 사막의 수맥 같은 파란 심줄을 세우고 힘주어 밥상을 닦는 아내의 마음속엔 수레국화 꽃다발 사방으로 흩어지고 - 「돼지」 중에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무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 그렇게 표현했다. 비유가 신선.. 2022. 7. 21.
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 3/도종환 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더 보자. 이름보다 먼저 그대 귀를 찾았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더한 부름으로 버거웠던지 유령처럼 스르르 가버렸다 -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건 그 어느 한쪽의 필요만은 아니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버거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린 빈 공간에 서 있다. 이 시의 제목대로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것은 어느 한 쪽의 필요에서가 아니듯 서로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사랑했을 텐데 그냥 황망히 떠나 버린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내용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거기에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해서 한 편의 시로 자기 감정을 제대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 2022. 7. 21.
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 4 /도종환 4. 관념성과 불필요한 난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간다 무한한 공간 속으로 닫혀 있는 창을 열고 雨의 장막을 넘어 나는 간다 영원한 침묵 속으로 저자 거리의 소음을 뒤로 하고 검은 숲 오솔길을 걸어 나는 간다 절대의 고독 속으로 닫혀 있는 창 너머로 누구와도 아닌 홀로서 순수 이전으로 돌아간다. - 「순수 이전으로」 a--a'--a" 형식으로 씌어진 이 시는 '나는 간다, 어디 어디로.' 의 기본 골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인 내가 가는 곳은 '무한한 공간' '영원한 침묵' '절대의 고독' 속이다. 그곳을 작자는 순수 이전의 곳이라고 한다. 순수 이전의 곳, 그러니까 지금 순수한 곳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그 어떤 곳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순수 이전의 곳이라는 .. 2022. 7. 21.
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 5/도종환 5.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시를 쓰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로 정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서란 어떤 사물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말한다. 러스킨은 사랑, 존경, 찬탄, 기쁨의 네 가지와 미움, 분노, 공포, 슬픔의 네 가지를 합쳐 '8대 정서'라 했다. 사람의 감정 중에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 모두 시가 될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지, 정, 의(知情)가 모두 시심의 밑바탕이 된다. 그 중에서 '정'이 정서가 되겠는데, 문제는 이런 감정 중 사랑 또는 이별 슬픔 외로움 등의 감정만이 시의 중요한 정서인 것처럼 편협하게 생각하는 태도이다. 문득 헤어져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기쁨이 영원할 것 같지만은 않다.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 2022. 7. 21.
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 6/도종환 6. 추상적인 표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런 놈끼리 저런 놈끼리 요런 놈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작은 괄호로 묶고 큰 괄호로 묶고 묶고 묶다 보면 결국은 하나 하나라는 것을 이런 놈도 저런 놈도 요런 놈도 알고 있을까? - 「하나로 살기」 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때 더 생동감이 있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을 빌어 생생하게 그려갈 때 느낌이 더 살아난다. 이 시는 끼리끼리 집단 이기주의로 모여 살지 말고 하나되어 살아야 한다는 심정을 표현하려 한 시다. 만약에 다음과 같이 고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비교해 보자 모래알은 모래알끼리 조약돌은 조약돌끼리 버려진 돌들은 버려진 돌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개울가에서 만나고 여울로 가다가 .. 2022.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