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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법과 교수

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 3/도종환

by 푸름(일심) 2022. 7. 21.

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더 보자.

이름보다 먼저 그대 귀를 찾았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더한 부름으로 버거웠던지
유령처럼 스르르
가버렸다

-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건 그 어느 한쪽의 필요만은 아니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버거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린 빈 공간에 서 있다.

이 시의 제목대로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것은 어느 한 쪽의 필요에서가 아니듯 서로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사랑했을 텐데 그냥 황망히 떠나 버린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내용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거기에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해서 한 편의 시로 자기 감정을 제대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겨드랑이~'로 시작되는 긴 제목이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제목도 내용도 다 미완성으로 끝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시를 쓰면서 내가 지금이 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는가 하고 되물어 보아야 한다.

다음 시는 어떤가 함께 읽어보자.


돌담은.....,
아닙니다.
어릴 땐 가지런한 층층에 끄덕머리 하다가, 흔들고 다시, 여물게 손가락질 하나 둘 헤다가,
마침내 올라서서 이쪽과 저쪽 세상 가운데를 걸으며 조심스레 팔저울도 했지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저는 이미 많이 자라서 한여름 놀던 그 그늘, 한 겨울 고인 볕뉘와
속살거림, 모두 까닭 없었어요. 때로 생각이야 나지요. 가을이었어요 누군가 싸리비 하나
꺽어들고선 저 산 너머로 가라며 저를 자꾸 내몰았어요.
가라면 간다며 그 길로 돌담 등지는데, 때깔 곱게 물든 단풍 숲 사이 바알간 노을이 깃들더니 이내 두 눈 가뭇가뭇 멀게 했어요.

그 후론 여기 이 바깥 세상에 쭉 살았지요. 어떤 날은 취해 밤낮을 바꾸고 또 어떤 날엔 싸우다 승리, 패배, 승리 패배 패배했어요, 삭신 다 닳은 세월 속절 없지만 아파서 제겐 더 살뜰한 기억이지요.

다만 잊을 수 없는 건 그 낮은 돌담. 웃자란 키로 들여다봅니다.
안팎으로 그늘과 속살거림 거느린 것이며, 자라지 못하는 속엣 것들 고즈넉이 품은 모양이며, 누군가 또 싸리비 꺾어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거라며 저를 쫓아내는 것까지도 두고 올 적 그대로지만, 삶이란, 예전에 그랬듯, 홱 떠나는 것은 아니더군요.

....안됐거든요.

저물 무렵
그 모든 게 노을 함께 지면
참 안돼 보이거든요.

이제 와서 저는
슬퍼할 밖에요.

- 「돌담」

많은 쉼표와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실로 들락거리는 구성은 자칫 혼란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속에도 정연한 내적 질서가 있다.
돌담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유년기와 성장기, 세월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면서 아름답고 아프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떠나기 싫던 우리들 근원적 삶의 터전과 그 터전을 떠나와 끊임없는 싸움을 되풀이하며 성장 해야하는 현실의 경계에 돌담이 있다.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주제를 내포한 구절도 자연스럽게 시 속에 녹아 있고 우리 모두가 체험한 통과의례의 상징으로 '돌담'이 제 구실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되돌아 보여지는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성장시'로 손색이 없다.
전통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든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내든, 문제는 한 편의 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나타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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