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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동상

by 푸름(일심) 2022. 7. 21.

이끼/정성희 (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동상) 

 

 

어디선가 엄마 냄새가 훅 끼쳐온다. 한적한 모퉁이를 돌다가 걸음을 멈칫한다. 음지에서 거적대기 하나 없이 맨살 부비며 살아가는 한 무리의 초록 잎새에 시선이 모아진다. 척박한 땅에 납작 엎드린 이끼를 보는 순간, 가슴속에 싸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그래서일까,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은 그곳 언저리를 맴돈다.

 

 

언제부터인가 어느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은 이끼가 애처롭게 다가왔다. 손 끝에 만져지는 이끼의 짙은 세월이 는개처럼 내 가슴에 내려앉은 것도 그 즈음일 게다. 남을 끌어당기는 별난 미색이나 유려한 말주변도, 야단스런 겉치레도 하지 않는 이끼 옆에 기웃대는 그림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사람들로부터 밀려나고 버림받은 이끼는 내게 있어 그저 구석 한 켠에 방치된 우중충한 정물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이끼를 더럽고 추하다고 발길질하며 긁어내기도 했었다.

 

 

나무나 바위를 뒤덮는 이끼의 꽃말이 자식을 감싸는 모성애의 의미를 지녔음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면서도, 원망도 바램도 없이 뭇생명들을 보듬는 이끼에게서 맑은 영혼이 느껴졌다. 비록 자신은 춥고 배고플망정, 숲에 사는 생명체들의 엷은 이불이 되고 양식이 되어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느꺼운 배려가 저릿한 아픔으로 내 가슴에 여울져왔다. 애벌레가 이파리를 배불리 파먹을 때까지 몸을 뒤척이지 않는 나무의 음덕이 저러했을까. 모질도록 푸른 제 목숨을 아낌없이 소신공양하는 이끼의 희생이 불현듯 시련 속에서도 온 정성과 억척을 쏟아 부은 내 엄마의 지나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끼에게선 푸른빛이 감도는 비릿한 슬픔의 냄새가 난다. 이른 새벽 정화수 떠놓고 두 손 모아 비손하던 엄마의 마음빛깔을 닮아서일까. 엄마의 삶도 이끼처럼 그늘지고 눈물이 많았다. 남들 앞에 내비치는 엄마는 정신이상자요 무지랭이였다. 그것이 부끄러웠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 없는 엄마를 후미진 유배지로 귀양 보냈다.

 

 

내 젊음의 뜰에 늘 어두운 그림자로 서성이던 엄마를 헤아리지 못한 나는, 모난 세상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살을 에는 아픔을 참아내느라 억장이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바람 잦을 리 없는 마음에 잔걱정이 누에알처럼 슨다한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나뭇잎이 어지럽게 앞마당에 나뒹굴 때면, 엄마는 신파극에 나올 법한 대사들을 술술 잘도 쏟아내곤 하셨다. 엄마의 푸념이 허공을 맴돌다 내 머리에 와 둥지를 틀 때면 안개보다 더 짙은 상념이 나의 영혼을 어지럽혔다. 덜 삭은 슬픔이 창자에 고여들자, 시퍼런 갈기를 곤두세우고 엄마는 내게 걸림돌이라며 고무공처럼 되받았다. 이제 막 물 오른 새침 떼기 사춘기 계집애는 행려병자 같은 초라한 행색의 엄마가 늘 못마땅했다.

 

 

오래 전, ‘못생긴 사람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어느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생각난다. 그는 얼굴에 기형을 동반하는 스터지 웨버 증후군이란 희귀병을 가진 그레이스 맥대니엘이다. 당나귀얼굴을 한 그레이스는 서커스단의 괴물쇼 전시회에서 관객들의 조롱과 비웃음에도 손을 흔들어주며 아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했다. 하지만 아들 엘머의 영혼은 그의 외모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수고한 돈을 마약과 도박으로 다 탕진해버렸다. 빈털털이가 된 그레이스는 그러한 아들을 내치지 않고 품안으로 거두어들이며 정성을 다하다가 끝내 세상을 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따뜻한 엄마’였음을 그의 아들은 종내 깨우치지 못했던 것이다.

 

 

전생에 무슨 업보를 지었던가. 손가락 사이 겉돌던 막내 딸년이 급기야 어미품안을 박차고나갔다. 슬픔이 웃자라면 바람 빠진 듯한 헛웃음만 나온다던가. 망나니를 대문간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하늘을 향해 망연히 웃으신다. 그것이 이별보다 더 아픈 그리움이란 걸 그때는 정녕 알지 못했다.

 

 

"하룻밤만이라도 여기서 묵고 가거라……." 엄마의 간곡한 말이 방향을 잃은 채 비틀거리다 땅 위로 무기력하게 떨어진다. 마른 두 눈에서는 깊은 호수가 일렁인다. 엄마는 젖은 마음을 숨기려는 듯 야시비가 내린다며 넌지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대문간에 서서 아롱아롱 눈물짓던 울 엄마, 간절함이 목에 걸리는지 연신 마른침을 삼키신다. 어쩌다 시뻘겋게 달아오르다가도 떫지근한 성미에 물러터지고 마는 촌뜨기 같은 울 엄마, 큼지막한 생을 보퉁이에 이고 홍시빛 달뜬 사랑을 내보이며 저만치 멀찍이 서있는 뒷모습이 애처롭다. 살아생전 망나니 딸년을 품안에 두고 싶었건만, 끝내 그 고운 소망 지피지 못한 채 육십의 언덕을 갓 넘은 길을 멈추고 말았다.

 

 

영화가 한 장면의 예술이듯, 사람의 일생도 세월 한 켠에서 풍화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남는지 모른다. 물밑에 거대한 얼음덩이를 숨겨둔 빙산의 일각처럼, 스쳐간 삶의 한 장면은 그 뒤에 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던 엄마의 젖은 미소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비문이 되어 내 가슴 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삶이 이리저리 곡예를 부릴 때면, 엄마는 자주 일상을 놓치곤 했다.무당이 신을 부르듯 애끓는 아픔을 토해낼 때면, 하늘이 맴을 돌고 땅이 요동을 쳤다. 사는 일에 능하지 못해 마음속에 무덤이 쌓일 때면, 마당에다 집기들을 내던지며 가슴북을 치셨다. 눈 덮인 산자락을 휘돌아 온 바람이 자진모리장단으로 세월의 허리를 감을 때면, 심해바다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였다가 풀어지고, 풀어졌다가 조여드는 진양조 한풀이로 굽이굽이 넘어온 인생길을 한 됫박쯤 쏟아내셨다. 한 바탕 요란한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는, 바스러지는 검은 재만 가득 남았다.

 

 

엄마는 끓어오르는 울분을 삭히지 못해 가슴을 새카만 숯덩이로 태우다가, 급기야 혼쭐을 뒤흔드는 정신이상증세에 끄달리게 되었다. 바깥바람이 잦았던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엄마의 시선은 늘 아버지에게 향했다. 아마도 한 남자의 여인으로 출렁이는 봄볕을 마음에 품고 싶었던 여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인들 아리따운 꽃이 되고 싶지 않았으랴. 다 지나간 한평생이라고 읊조리는 엄마의 애달픈 흥타령이 고추보다 더 맵싸하다.

 

 

괘종시계가 서너 번 울리면 엄마의 치마단이 문지방을 넘는다. 맑은 정화수 한 사발을 떠와 윗목에 차려놓고 마른 장작 타는 소리가 나도록 두 손 모아 비나리하신다. 주렁주렁 꽃망울을 매달고서 꿈에 부푼 어기찬 삶이기를 기원했으리라. 세상바람이 행여 세차게 불까봐 아래를 내려다보는 어미의 가슴은 늘 고빗사위였으리라. 엄마의 기도가 약이 되었는지 콩 볶듯 어수선하던 내 인생이 시나브로 가라앉았다.

 

 

세월은 쇠어버린 지난날들을 그립고도 아련하게 해주는 별스런 재주가 있나 보다. 지나온 길목마다 복병 없는 삶이 있을까마는, 속병을 다스릴 처방이 그리 쉬울쏜가. 엄마의 구슬픈 타령을 듣고 있자니, 콧마루가 겨자 먹은 듯 알싸해진다. 등 굽은 작달만한 울 엄마, 젓갈 새우처럼 짠 생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한 엄마에게선 늘 습지고 쾨쾨한 냄새가 났다. 궂은 인생살이로 거칠어진 엄마가 그때는 어이 그리도 못나 보였을까. 그렇게도 부끄러웠던 못난이 엄마가 이젠 한떨기 꽃송이 같이 향기롭게 다가온다. 일평생 자식들의 앞날에 티를 가려내느라 늙어 쇠잔해진 엄마의 일생은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한 경전이 아니던가. 남에게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더라도, 엄마의 일생은 값지다. 누가 내 엄마를 추하다 욕하겠는가. 거칠어질수록 여물어 가는 내면에서 그윽한 향취가 빚어짐을 누가 외면한단 말인가.

 

 

햇살이 창을 넘어와 너덜해진 엄마인생을 쥐고 흔들어댄다. 미간에 잡힌 주름이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다가 다시 눈을 감으신다. 이제 엄마에겐 애환을 담은 세상 모든 것이 다 헛것이요, 부질없는가 보다. 지나온 숱한 편린들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채 정체된 시간 속으로 침잠한다. 남은 거라고는 세월의 수레바퀴에 누렇게 삭아내린 마른 일상뿐이다. 꽃잎파리들이 바람에 사라락 사라락 떨어지는 만추에, 미동조차 않는 엄마의 정지된 삶에서 뭉클한 연민을 느낀다.

 

 

삶의 고달픔을 모서리가 깎여나간 넉넉한 웃음으로 삭일 줄 아는 세월의 굽이에 접어들어서인지, 마음의 갈피마다 아늑한 울림이 일어난다. 엄마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둔 건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나였음을 뒤늦게사 깨우친다. 아리지 않는 손가락이 어디 있으랴만, 엄지인 아버지보다 새끼인 나에게 더 큰 아픔을 지니고 있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상을 향해 폐달을 밟아가는 날숨에 거친 휘파람 소리가 묻어날 때면, 애면글면 인고의 세월을 다독이며 살아온 당신의 역사를 떠올린다. 장독에서 장냄새가 나듯 삶도 내림하는지 모른다. 엄마가 그러했듯이, 나도 유별나게 푸른 구석을 좋아한다. 있는 듯 없는 듯 후미진 길머리에 서서 소슬히 여울지는 세월의 뒤안길을 말없이 뒤따르고 있다.

 

 

간절함이 담긴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그렇게도 속을 태우던 막내딸년이 이제서야 가로 늦게 철들어 잎겨드랑이마다 달맞이꽃을 매달고 제 어미의 해어진 마음을 기우며 곁을 지킨다. 달빛에 나붓거리는 꽃잎들 사이로 이끼내음이 파랗게 달무리지면, 노오란 그리움이 추신되어 망울망울 눈물진다.

 

 

후룩후룩 꽃잎이 질 때면, 까막눈 당신은 물기 많은 한숨을 거두고 걸음걸음 흩뿌려 놓은 꽃길을 즈려 밟고 건너마을 고개를 넘고 계시리라. 저 너머 햇빛이 잘 드는 산등성이 언저리에서 골 깊은 주름을 활짝 펼치며 늦은 가을을 말리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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