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깁다
이 희라
남편의 방한복을 손질한다
지퍼를 올리려니 꼼짝 않는다
그가 걸어온 길이 지진으로 찢어진 도로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봉합되지 않는다
녹슬어 이가 빠진 지퍼
혹한의 거리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의 어금니가 뽑히는 것도 참아낸 걸까
일거리를 파헤치던 소맷귀는
낡아 헤어져 탄력을 잃고
말없이 삼키고만 사연들이
실밥마저 닳아터진 자리에
삐져나오다 말고 주춤거린다
살며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싸늘한 동전 한 닢
한 푼이라도 아껴 쓰려던 그가
자린고비로 살아온 삶의 비늘이다
작은 일에 투정하며 쐐기를 박았던 말들
묵묵히 받아넘기며 살아온 그이
터진 옷을 깁다말고
가벼워진 방한복을 와락 안아본다
출처 : 정순 시인의 시밭
글쓴이 : 감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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