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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유소

by 푸름(일심) 2022. 8. 5.

주유소

 

                              윤성택

 

 

단풍나무 그늘이 소인처럼 찍힌

주유소가 있다 기다림의 끝,

새끼손가락 걸 듯 주유기가 투입구에 걸린다

행간에 서서히 차오르는 숫자들

어느 먼 곳까지 나를 약속해줄까

주유원이 건네준 볼펜과 계산서를 받으며

연애편지를 떠올리는 것은

서명이 아름다웠던 시절

끝내 부치지 못했던 편지 때문만은 아니다

함부로 불 질렀던 청춘은

라이터 없이도 불안했거나 불온했으므로

돌이켜보면 사랑도 휘발성이었던 것,

그래서 오색의 만국기가 펄럭이는 이곳은

먼 길을 떠나야 하는

항공우편봉투 네 귀퉁이처럼 쓸쓸하다

초행길을 가다가 주유소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여전히

그리운 것들은 모두 우회로에 있다

출처 : 정순 시인의 시밭
글쓴이 : 감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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