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을 다녀오다
푸름/ 김선옥
올 여름은 유난히 가뭄도 심하고 더위도 대단하다
집 나서면 고생인줄 뻔히 알면서 몇일째 휴가 생각인데 아들내외가 경주로 가는데 함께 가자며 전화를 주었다. 교육공무원인 며늘아기가 한달전에 경주 교육문화회관에 3박4일 일정으로 예약 해놓았다는 것이다,
시집 출판 식을 앞둔 터라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여 망설였지만 아들 내외의 성의도 있고 사실 천년 신라의 고도 경주를 한번 가보고 싶은 터라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다
첫째 날
8/4 7시에 아들 내외와 손자( 상현5세) 나
인천에서 경주까지는 약 387km. 천 리 길이다 4시간 정도 소요 예정이었지만 휴가 절정이어서 그런지 경주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 7시간도 더 걸린 것이다, 경주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보문 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고 잠간 휴식을 취하는 사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손자 녀석이 아빠가 가져온 안내책자를 부지런히 보더니 ATV 체험 장에 가서 사륜 오토바이를 타자고 조르기에 우리는 이내 숙소에서 5분 거리쯤에 있는 그곳으로 가서 1시간을 즐겼다, 역시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저녁을 보문 관광 단지 내의 먹거리 촌으로 결정 그 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화 한정식에 들어가서 27000원짜리 가장 저렴한 가격? 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니 경주의 첫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내친김에 신라때 임금과 신하들이 주로 잔치를 하며 놀기도 하고 왕자의 거처로도 사용하였다는월지(月池=달빛이 고운 연못), 후일에 기러기와 오리만 노는 연못이라 하여지금 까지 안압지로 불리어지는 경주 관광코스 중 꼭 거처가야 하는 안압지 야경을 구경했다,
옛 달은 없고 태평성대의 호사는 추측 뿐, 휘황찬란하게 연못을 밝히고 있는 야경은 현실과 과거를 절묘하게 조합된 한 폭의 예술 작품 이었다,
여기서 안압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옮겨본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창건하였다고 삼국사기에 기록 되어 있으며, 19년에는 궁궐을 매우 장엄하게 중수하여 예장왕 5년에 군신(임금과 신하)들이 연회장으로 사용함을 시작으로, 그 후 많은 임금들이 연회장으로 사용하였으며 신라말기 경순왕이 후백제 견훤의 난을 겪은 뒤 931년에는 고려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주연을 베풀어 주며 신라의 위기를 호소하고 고려에 합병해 주기를 청 한 장소로 유명하다. 안압지는 평지에 연못을 파고 연못 안에 12개의 봉우리를 만들어 무산 12봉(巫山12峰)이라 불렀는데 무산은 중국 사천성의 명산을 생각하여 지은 이름이다. 연못 속에 3개의 섬을 만들어 해중신선도(海中神仙島=바다 가운데 신선이 사는 섬)로 만들어 나무와 꽃을 심어 새와 짐승들을 길렀다.
1980년 정화공사로 현재의 3동의 누각을 복원하고 기타 건물지는 초석(주춧돌)을 배열하여 원래의 모습을 추축하게 하였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신라가 망한 뒤로 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 바람에 연못에 갈대가 무성하고 달빛이 아름답던 연못에 기러기와 오리떼만 몰려와 살아서 안압지라 불렀다 (기러기雁,오리鴨,연못池)
둘째 날(8/5)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숙소를 나섰다, 연일 폭염이 계속 되었기에 아침 일찍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구경을 하고, 낮에는 실내 위주로 돌아다니기로 계획하고 두 번째 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전 8시 30분경 토함산 자락 불국사에 도착하였는데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고, 한가했다,
경덕왕 10년(751년)에 창건 되었고. 삼국통일 이후 문화적 역량이 최고였던 시절, 당시의 신라인들은 신라땅에 불국토를 구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웜이 담긴 뛰어난 과학 기술과 건축술, 예술적 감수성이 만나 탄생한 것이 불국사라 하는데. 아름다운 청운교와 백운교가 있고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의 미려함이 발길을 잡는다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경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 탑이 다보탑. 서쪽에 있는 좀 둔탁해 보이는 것이 석가탑 일명 무영탑이다.
다보탑의 건립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고 하며 석가탑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경이며, 그 후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고. 그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는 과정에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 내었고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무영탑(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불국사를 뒤로하고 석굴암으로 향했다
불국사에서 석굴암 까지는 30여 리쯤 될까? 토함산 허리를 감도는 포장길이 울창한 노송사이로 숨어들고 다시 나는 꼬불길 이었는데 도시를 탈출한 나에게는 어느 신비의 곳 심산 운곡으로 가는 착각을 하게 했다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에 경주 토함산(吐含山)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로.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기법 등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으로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곳으로, 신라 경덕왕 10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에 완성하였고 처음에는 석물사라고 했다고한다,
석굴암은 이제 칸막이를 해 놓았고 사진촬영까지 금하고 있어 아쉬웠지만, 관람객들의 무분별한 행동에서 격리시켜 인위적 회손을 막고 멀리 동해의 해풍으로부터 부식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석굴암을 나와 다시 온길 불국사로 돌렸다, 지나치는 길에 봐둔 김동리 박목월 문학관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은 석굴암에서 잿길을 내려 동해 바다에 수장되어 외구의 침략을 막고져 했던 문무대왕암을 보는 것인데 차질이 불가피 했다, 아이들이야 별 관심이 없겠지만 나에겐 중요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동리와 박목월 선생의 연보 보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명색이 나도 시인이라는 긍지 때문이던가,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당선으로 등단한 김동리와 김소월과 김영란을 잇는 향토와 서정을 담아낸 박목월, 1933년 중학교 때 동시로 특선을 받고 문단에 입문 하였으니 이곳 경주 역사에 또하나의 보물이 아니겠는가. 또한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이고, 학창 시절, 소설이나 시집을 접하기 어려울때 "사반의 십자가"와 무녀도를 읽었고 이때부터 막연하나마 문인을 동경하고 있었고, 지금은 조금이나마 그 꿈을 이룬 계기가 된 터라 응당 들려야할 곳이기도 했었다
김동리, 박목월 시인 문학관을 둘러 본 후 문무대왕릉으로 향하였다.
문무대왕릉은 신라 제 30대 문무대왕의 바다 무덤이다. 문무대왕은 아버지인 태종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대왕 암은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길이 약 20m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라는 대왕의 유념에 따라 불교식 장례법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이곳에 모심. 따라서 이곳은 문무대왕의 거룩한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다. 이런 형태의 능은 세계의 어느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봉길 해수욕장 앞에 있는 문무대왕릉을 본후 우리 가족은 해안가를 따라 좀더 달려 감포 해수욕장 주변으로 갔다. 그곳에서 상현이와 아빠가 해수욕을 하였는데 상현이는 동해의 바닷물이 깊고 발이 닿지 않아서인지 무서워 하였고 그래서 짧게 해수욕을 끝내고 남은 오후 시간을 경주 시내로 다시 돌아가 국립 경주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국립 경주 박물관은 고고관, 미술관, 안압지관의 세 개의 상설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야외 전시관에도 빠뜨리지 말고 보아야 할 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고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신라시대까지 경주와 인근지역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는데, 고분에서 발견된 많은 유물들은 황금의 나라라고 불렸던 신라를 느끼게 한다. 특히 천마총에서 발견된 금관과 장신구는 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로 신라 조형예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준다. 또한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성덕대왕 신종은 워낙 유명한데다 잘 보이는 곳에 있어 모두들 가장 먼저 둘러보는 곳인데 국보 제29호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신라 경덕왕은 부왕인 성덕왕의 위업을 추앙하기 위하여 구리 12만근을 들여 이 대종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아들 혜공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혜공왕 7년(771)에 이 종을 완성하고 성덕대왕신종이라 명명된 것이다.
이 종에 얽힌 전설은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하기 위해 34년이나 매달려 왔던 신라인들은 실패가 계속되자 신종의 소리를 얻기 위해 어린아이를 희생양으로 바치기로 했고, 불국토의 도래를 알리고 신라의 종소리를 만들기 위해 엄마 젖을 빨던 한 아이가 펄펄 끓는 쇳물 항아리에 바쳐졌던 것으로.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애절한 소리가 종 속에 깃든 것이라고, 봉덕사종, 혹은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이 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국립 경주박물관을 둘러 본 후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하고 저녁시간에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밀레니엄파크를 갔다.
신라 밀레니엄파크는 ‘선덕여왕의 촬영지’로 유명한데 이곳은 선덕여왕을 촬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세트장으로 웅장한 크기를 자랑한다. 범위가 워낙 넓었으나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강행군으로 다리가 너무 아파서 간단히 둘러보기로 하고 입구에서 가까운 몇 곳을 둘러 본 후 이곳에서 하고 있는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저녁시간에 하고 있는 공연은 “천궤의 비밀”이라는 것과 “신라의 밤”이라는 것이었다. 신라의 밤은 6두품 화랑과 신라 여왕과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다룬 공연이었고, "천궤의 비밀"은 화랑 미시랑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당나라와 싸워 승리한 이야기를 다룬 스펙타클한 100억원이 투자되었다는 공연이었다.
재미있게 공연을 구경한 후 거의 밤 10시가 다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둘째 날도 이렇게 하루 일정이 짜임새 있게 마감되었다
셋째 날...(8/6)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오늘은 좀더 늦게 하루 일정을 시작하였다. 피로가 누적되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9시 조금 넘어 숙소를 나갔고, 가장 먼저 간 곳은 첨성대였다. 첨성대는 신라시대에 건립된 천문대이다. 밖에서 간단히 둘러 본 후 반월성, 석빙고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가면서 코스모스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다. 반월성(신라의 왕궁터)까지 가보려 하였으나 상현이가 너무나 힘들어 하여 가는 길에 있었던 계림(김알지가 태어났다고 하는 곳)만 보고 다시 발길을 돌려 포석정으로 갔다.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의 정원 시설물. 돌로 구불구불한 도랑을 타원형으로 만들고 그 도랑을 따라 물이 흐르게 만든 것으로서, 신라귀족들은 이 물줄기의 둘레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화려한 연회를 벌였다. 기록상으로는 880년대에 신라 헌강왕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것이 처음 나타나나, 7세기 이전부터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927년 11월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화려한 연회를 벌이던 중 뜻하지 않은 후백제군(견훤군)의 공격을 받아 잡혀 죽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이곳을 둘러 본 후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간 곳은 천마총이다. 이곳은 대릉원(크고 작은 20여개의 신라고분이 밀집되어져 있어 이 고분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라는 곳 안에 위치하고 있는 무덤으로 누구의 것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천마총 내부는 출토상황을 그대로 복원하여 발굴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금관을 비롯하여 각종 금,은제 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저곳을 둘러 본 후 경주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이화 한정식(으로 35000원)먹은 후 사우나를 다녀와서 쉬었다.
넷째 날(8/7)
늦은 아침을 먹고 귀가를 서둘렀다 3박 4일의 여정을 모두 마치고
경주의 명물 황주빵에 버금가는 경주빵을 주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몇박스 산 후 집으로 향하였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 된 경주역사 유적지구(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둘러보면서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많은 유적들, 신라인이 남긴 멋진 자취를 흠뻑 만끽할 수 있었고
이번 여행은 정말 후회없는 역사탐방을 겸한 보람있는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현이가 차창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주에서 보았던 구름이 따라온다 하여 한바탕 웃음꽃이 뭉게구름처럼 퍼져 나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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