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정성희 (2012년 제67주년『교정의 날』기념 학술·문예 우수상 수상)
썩을 년아, 뭐드러 여길 또 온 겨.
나를 보자마자 울먹울먹하는 다 자란 계집아이를 가자미눈으로 째려보면서 냅다 거친 인사 한 소절을 내던진다. 풀죽어 고개 숙인 아이의 젖은 눈망울과 마주친 순간, 가슴이 먹먹해 온다. 아직도 제 어미 뱃속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낭랑나이에 어쩌려고 자꾸 오는지, 그저 세상이 야속해진다. 창살 칸 사이로 아이의 거동을 내려다본다. 아이에게 “밥 먹었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녁밥상을 건넨다. 조촐하다. 아이는 개 보름 쉬듯 밥술을 떠서 입 안에 마구 쑤셔 넣는다. 나는 ‘어서 먹어라’고 무언의 눈짓을 보내고는 간간이 고개도 끄덕거려 준다.
아이가 뒷마무리 하는 동안, 하루 일을 정리한다. 그리고는 거실 안에 홀로 남겨두고 무거운 철문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한다. 현관 입구에 장신구며 옷가지들을 벗어던지고 긴 소파에 몸을 뉜다. 편안함이 녹아든다. 탁자 위의 리모컨을 집어 들고 텔레비전을 켠다.
저게 뭐꼬. 온 사방에 삿갓을 눌러쓴 듯한 둥근 꽃이 만발해 있다. 화면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럴 수가……. 해파리 무리들이 아닌가. 가을 탁발승의 시주바가지마냥, 웬 놈의 해파리들이 너르디너른 쪽빛 바다를 비좁도록 드나든단 말인가. 슬며시 궁금할 즈음, 양복 차림의 뉴스 앵커가 뭐라고 입을 오물오물 거린다. 볼륨을 높여 귀를 쫑긋 세운다. 우리나라 서해는 물론 남해안까지 해파리들이 군단을 이루어 몰려와, 고기잡이 그물들을 망가뜨리고 어족들을 마구 먹어치우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해수욕객들을 공격하며 상처를 입힌다고 보도하고 있다.
해파리는 물처럼 맑고 청초하여 심성 또한 그러하리라 지레짐작했건만, 아니 이건 또 뭔 소린가. 생긴 꼬락서니가 물렁물렁해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은 얌전한 놈이 불특정다수를 향해 그토록 난폭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니, 귀신인들 알아차렸겠는가. 둥근 우산 모양의 몸통 아래에 독을 묻힌 쐐기를 숨겨두고는, 누구라도 제 몸을 살짝 건들기만 하면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얹어주니, 꼴에 사납기가 맹수 못잖다. 청포묵 같은 물컹한 몸뚱이 어느 곳에다 그런 막돼먹은 소갈머리 심보를 감춰뒀는지, 그 깊고 어두운 골뱅이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해파리는 사람들이나 바다생물들에게 그다지 성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왔고 며칠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그 존재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독성을 가진 수만 마리의 해파리들이 장소를 따지지 않고 온 지구촌 물가를 몽땅 점령해버려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지구 탄생 초기부터 대양을 떠다닌 고대 생물이 이토록 심각한 말썽을 피운 것은 그리 오래 전부터 있어온 현상이 아니라고 한다.
이들의 몸은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져, 아무리 큰 무리를 형성해도 물고기 떼와는 달리 위성이나 음파탐지기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해서 사투를 벌여 한 마리라도 애써 낚아챌라치면, 눈치 빠른 놈은 무수한 알과 정자를 배출하여 종족보존 작전에 들어가 자신을 방어한다. 섣불리 어찌해 보려다 수백 마리가 더 생겨나는 꼴이 되니, 괜히 종의 증식만 부추기는 셈이다.
사태가 이러하니 지구촌은 때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으나, 그 대책은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해양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해파리 떼의 기습은 물고기의 무분별한 남획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오염이 주된 원인으로 손꼽힌다 하니, 그 놈들의 못된 행실을 두고 딱히 나무랄 만한 끈덕지가 못돼, 그저 두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며 무지한 인간들을 탓하는 듯하다.
그토록 순하디순한 해파리가 사람들의 이기적인 야욕野慾으로 인하여 이 지경이 되었다니……. 몽둥이로 내리쳐 그 놈의 몹쓸 소가지를 뜯어 고치려던 맵짠 주먹을 이내 거둬들인다. 그리고는 쥐구멍에다 양심을 쑤셔 박고 찬찬히 생각을 가다듬는다. 불현듯 온 심장에 소름이 돋는다. 혹시 물속에서의 해파리의 반란이 땅위에서의 청소년들의 비행행위로 전이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이다. 그들도 해파리처럼 일정한 거처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들도 해파리처럼 범죄 집단을 이루며 몰려다니다가 불특정다수를 겨냥하여 ‘묻지 마’ 범행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위성이나 음파탐지기의 법망에 걸려들지 않아 형사책임을 면하게 되니, 어른들은 이러한 공격적인 성향의 청소년들을 매를 대면서까지 강압적으로 누르려 한다. 그럴수록 무수한 알과 정자를 배출하여 방어하는 해파리처럼, 그들의 반항심은 더 커져만 가고 가족과 학교라는 소속감마저 상실하게 된다.
사실 청소년 문제는, 해파리가 그랬듯이 지구 탄생 초기부터 존재해 왔다. 그래도 그때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태초의 아버지 신이 벌주는 대로 군말 않고 따랐으니 말이다. 만약 아버지 신이 아닌 어머니 신이었다면, 그토록 매몰차게 두 자식을 품 안에서 내쫓았겠는가. 허구한 날 시험문제나 내고 하지마라는 십계명이나 강요해 대는 엄한 아버지 신보다는 말없이 치마폭 안으로 감싸는 다정다감한 어머니 신이었다면, 인류의 역사가 이토록 험악하게 바뀌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가상도 해본다.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의 풍속도첩 중 ‘서당’이란 그림이 있다. 훈장한테서 회초리 맞은 아이와 또래 학동(學童)들의 심리묘사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훈장 앞에 앉은 어수룩하게 보이는 사내아이가 눈을 내리깔고 서러움에 복받치는지 눈물을 찍어대며 바지 대님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아이를 둘러싼 또래 몇몇이 입을 가리고는 킥킥댄다. 아이는 동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듯하다. 그래도 시절이 18세기인지라, 사람들의 심성이 지금보다는 고왔을 터이고 아이들의 익살스러운 짓궂음에 덩달아 웃음이 날 정도이니, 그 순진무구함이 에누리 없이 전해진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주변과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얻으려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딜 가나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시험장이다 보니, 그와 상관없는 여타의 삶은 가차 없이 버려진다. 교실마다 만점짜리가 수두룩하다. 완벽한 인조 컴퓨터인간으로 둔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요즘 애들은 감정마저 남김없이 쓸려가 버렸는지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해가 갈수록 학교를 떠나는 빈 의자들이 쌓여가고, 또 다른 봄이 와도 주인은 함흥차사요, 행랑이 몸채 노릇 하고 있다.
교과서를 등진 아이들이 갈 곳은 하늘과 땅 사이 어디에도 없다. 휘이휙 몰아치는 세찬 바람은 먹먹해진 이들을 희롱하듯 너풀대기만 한다. 그나마 텅 빈 거리엔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어, 길 잃은 어린 풀무치들의 여인숙이 되어주곤 한다.
어둠의 그림자가 짙을수록 절망의 무게가 깊어오는지, 아이들은 땅이 흔들리도록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상처에 상처를 더하지만 세상은 무관심한 듯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새하얀 어둠을 담은 검은 공허는 금세 그들의 미래를 지워버리고 오직 잿빛 현재만 남게 한다. 세상 전체가 패배와 좌절로 덮여 있다.
쭉쭉 뻗어 가지 못하고 꺾여진 채로 세상 모퉁이로 밀린 애송이 청춘들은 의연하게 하늘 아래 선 또래들이 부러웠을 게다. 한 줌의 희망도 끌어올릴 수 없는 무력감에 양지바른 꿈을 찾아 비상하리라는 포부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게다. 그럴 때면 울분을 삭이지 못하여 뱀이 갈라진 혀끝으로 독을 뿜어내듯, 앞니 사이로 침을 퉤퉤 뱉으며 뭐라 뭐라 욕덩어리를 쏟아낸다.
법정 스님이 옛 노사(老師)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더벅머리 학생에 관한 일화가 생각난다. 스님의 은사는 절친한 지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전달받았다. 그의 아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망나니짓을 해대니, 못된 버릇을 고쳐달라는 부탁의 내용이었다. 그날 노승은 아무 말 없이 저녁을 지어 더벅머리에게 건네고는, 발을 씻으라고 대야 가득 따뜻한 물을 떠다 주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따끔한 호통도, 지루한 연설도 없었다. 그런데도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고 한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난 학생은 훈풍처럼 따스한 스님의 사랑과 묵묵한 자비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사막에서 백 마디의 교훈보다 한 모금의 물이라도 건네주는 다사로운 손길을 더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매끄럽고 둥글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딱딱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듯이 말이다.
철망 속에 홀로 남겨둔 계집아이가 눈꺼풀 위에 얹힌다. 어른이랍시고 매서운 눈초리로 꾸짖었던 장면도 덧칠되어 쌓인다. 나도 세상 사람들과 한통속으로 장단 맞추며 덩달아 야단을 때리려 몸달아했다. 어른이라는 우위에 서서 틀에 맞춘 규율만이 전부인 양 희떠운 소리를 해대며 목청을 높였으니, 어찌 그들의 떨떠름한 비아냥을 빗길 수 있었으랴. 부끄럽다. 한없이 부끄럽다.
그 아이와 자주 마음을 대하다 보니,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계집아이는 라일락 향 같은 상큼한 미소를 내게 띄운다. 그 향기가 내 영혼 깊숙이 스며들어 풋풋함이 느껴진다. 아이는 비록 새장에 갇힌 노고지리 신세가 되었지만, 나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정을 뭉텅이째 던져주어,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고 싶다. 잘못에 대해 꾸짖기보다는 병아리 눈물만한 따뜻한 배려라도 베풀어, 이것이 먼 훗날 그를 올곧은 인격체로 거듭나게 만드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경쟁에서 뒤처진 듯한 패배감을 걷어 내고, 내일을 향한 작은 햇빛이나마 살뜰히 퍼 담아 그의 마른 가슴에 왈칵 쏟아 붓고 싶다. 그리하여 꿈과 희망이 잘려버린 여린 청춘에 싱그러운 연둣빛 봄물이 아롱아롱 맺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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