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의 구두
최 종 희
휑한 기운이다. 주인을 떠나보낸 애절함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맴돈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지팡이가 마루 끝에 덩그마니 쓰러져 있다. 책장 속의 빛바랜 고서에서 묵은 냄새가 폴폴 날린다. 오래된 사진첩에 흑백의 젊은 아버지가 밝은 미소를 보낸다.
장롱 문을 연다. 아버지를 감싸고 있던 옷들이 슬픈 듯 축 늘어졌다. 장롱 깊숙한 곳의 유품을 정리하는 손끝에 둔탁한 물체 하나가 와 닿는다. 뜻밖에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새 구두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별다른 불편함 없이 노년을 보냈다. 노인들의 기력은 예측이 어려운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의지하여 마실을 다녀오시곤 하였다. 그 기력마저 없어지자 과거인지 현재인지 오락가락하는 기억 속에서 대문 밖 출입을 거의 할 수 없게 되었다.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가 새벽녘 찬바람에 한기를 느끼던 계절이었다. 한낮의 온기를 데워준 햇빛이 아버지의 시선을 끌어당기기라도 했던 것일까, 방문을 열고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잎사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다가 뜬금없이 어눌한 발음으로 구두를 사달라고 하였다. 신고 다니지도 못할 텐데 뭣 하러 그러느냐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새 구두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셨다. 평소 특별히 무엇을 원한 적이 없던 터라 불안한 마음이 스쳐갔다. 부랴부랴 사온 구두를 품에 꼭 안은 아버지는 벌써 바쁜 걸음을 옮기시는 듯하였다.
아마도 새 구두와 함께 먼저 향교로 달려가시고 싶었을 것 같다.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은 유림으로 사신 삶이었다. 족두리와 사모관대를 쓰고 마주 선 신랑신부 앞에서, 구성진 목소리로 홀기에 따라 혼례를 집전 중이실지도 모르겠다. 관혼상제의 의식이 있을 때마다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차려입고 진두지휘를 하실 때는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아니면 번쩍번쩍하게 광을 낸 새 구두를 신고 동구 밖 버스 정류소로 향하셨으리라. 아버지는 도시를 ‘성내(城內)’라 불렀다. 오랜만에 성내로 나갈 때는 요란하게 준비를 했었다. 넥타이에 양복을 차려입고 얼굴만 보이는 작은 거울 앞에서, 모자를 눌러 쓰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행여 버스를 놓칠세라 몇 백 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느티나무 정류소에 미리 나와 기다리던 마을 어른들과, 한 해 농사 이야기와 앞집 뒷집 소식을 두루두루 오가며 담소를 나누셨다.
한가한 농사철에는, 읍내 다방에 나가 쌍화차를 시켜놓고 친구 분들과 둘러 앉아 바둑내기를 하는 것을 즐기셨다. 늙수레한 다방 주인을 김 양이라 부르며 농을 건네다, 해가 산 뒤로 숨을 무렵이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다.
새 구두가 집에 온 그날부터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구두를 신발장으로 옮겨 놓으면, 다음 날은 또 다시 방 안에 버젓이 앉아 있었다. 구두는 신발장에서 방으로, 방에서 신발장으로 오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방 안을 차지하여 함께 생활하였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서 신고 나갈 것인 양 방문 쪽을 향해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삶과 죽음의 다리를 건너는 듯 보였다. 완벽하게 살아계신 것도 아닌 멍한 표정으로 언뜻언뜻 혼자 말씀을 중얼거리셨다. 방 안으로 살며시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게 속삭이는 건지, 마당을 서성이는 바람에게 전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흘러간 시간 속의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삶을 정리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위태롭게 매달린 잎사귀를 보며,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끝자락을 예감하셨을 수도 있으리라. 감잎들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서둘러 먼 길을 떠나셨으니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구두’가 생각난다. 주인의 땀과 발 냄새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닳고 닳은 구두에서, 짧은 생을 힘들게 살다 간 고흐의 삶을 닮은 듯 서글픔이 느껴졌다. 고흐는 떠나고 없지만 구두는 남아서 그의 생애를 상기시키고 돌아보게 하였다. 고흐의 구두가 너무 허름해서 측은해 보였다면, 아버지의 구두는 한 번도 외출을 하지 못한 채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새것이기에 오히려 밀려오는 애잔함이 더하다. 이러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라도 하듯 장롱 속의 구두가 말을 건네 온다. 아버지와 함께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 많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며 슬픔에 젖은 나를 달랜다.
가까이 지내던 어느 이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그녀는 중한 병에 걸려 큰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주변을 말끔히 청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혹시라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를 머릿속에 그리며, 자신이 떠나고 없는 빈자리의 너저분한 모습들이 두려웠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 밖으로 걸어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예감한 순간 새 구두를 장롱 속 깊이 숨겼던 것은 아닐까. 한동안은 강한 삶의 의지를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구두가 그 몫을 실현할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한평생 머물다 온 길을 차분히 정리해 보았을 것 같다. 생애에 일어났던 사연들을 구두 속에 묻어놓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수도 있겠다. 옛날 어른들이 장롱 속에 꿀단지를 감추었던 마음처럼, 새 구두에 정갈하게 보관하여 꼭꼭 숨겨두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아버지의 삶이 저물어 가는 마지막까지 사랑을 독차지한 구두였다. 젊은 날의 기억을 되새김질하여 간직해야 할 구두이기에 소중할 수밖에 없지 않았으랴. 어쩌면 자식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유언을 장롱 속의 구두가 가장 진실한 몸짓으로 대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삶이란 두 다리를 활보하며 다닐 수 있는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나온 나날들을 더듬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올곧은 길을 가라는 말씀이기도 할 터이다.
아버지의 일상, 목소리, 완고함까지, 살아오신 모두를 가슴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듯이 먼 훗날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회상되어질까. 오늘 걸어가고 있는 발걸음들이 내 삶의 한 자락으로 가득 채워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어떠한 형태이든 결코 지울 수 없는, 자신만이 지닌 온전한 빛깔로 남게 될 것이 아닌가. 내가 머물다 온 자취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뒷모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두루뭉술한 허리선의 결점만을 탓하며 전전긍긍해 온 삶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허투루 내딛을 수 없는 한 걸음 한 걸음의 소중함이 새삼스레 가슴에 와 닿는다.
오빠는 구두를 유품으로 고이 챙긴다. 애틋한 마음을 담아 아버지를 모시듯이 조심스럽게 승용차에 싣는다.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장롱속의 구두, 이제는 오빠가 그 뜻을 이어받아 내일을 향해 뚜벅뚜벅 힘찬 발걸음을 옮기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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